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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이 사라진 자리, 75세 아빠가 심은 2년생의 꿈

할아버지집에 가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찾은 친정.집 앞 풍경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평소 대문 근처에 세워두었던 내 자전거가 마당 깊숙한 안쪽으로 밀려나 있는 게 아닌가.'누가 건드렸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그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자전거가 있던 그 자리에, 가느다란 젓가락 같은 막대기 두 개가 땅에 꽂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막대기가 아니라, 이제 막 시멘트 바닥을 뚫고 뿌리를 내린 작은 나무 두 그루였다. 대문을 없애버린 파격적인 선택 이후, 아빠가 가져온 다음 대안은 바로 이 앙상한 묘목들이었다. 철제 대문 대신 생명력이 자라나는 '초록색 문패'를 세우고 싶으셨던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그저 가시 돋친 나뭇가지가 애처롭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 웬 나무예요? 자전거는..

대문까지 없애버린 아빠의 파격 선택, 보안은 괜찮을까?

이사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대문은 보이지 않았다.집을 지켜야 할 묵직한 철제 대문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사 때 사다리차가 들어와야 해서 잠시 떼어놓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대문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대신 그 자리에는 낮은 턱 하나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당, 그리고 1층과 2층(옥상)으로 연결되는 계단만이 나를 반겼다. "아빠, 대문은요? 대문을 아예 떼버리면 어떡해요! 요즘 세상이 어떤데!"내 비명 섞인 걱정에 아빠는 허허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하셨다."이사할 때 떼었더니 골목도 훤하고, 햇볕도 잘 들고 얼마나 좋냐. 도둑? 가져갈 것도 없다. 그리고 그거 다시 설치하려면 다 돈이야."아빠의 논리는 단순하고도 강력했다. 가로막는 걸 치우니 마음이 트인다는 낭만과, 다시 달려면 ..

로얄살루트인 줄 알았는데 머루주? 아빠의 기막힌 양주병 재활용

첫 날 말했듯, 나는 옥상 난간에 가득한 겨울이의 매직 낙서를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것들을 지우는 대신 물끄러미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아빠, 저 낙서 정말 안 지워도 돼요? 이제 더 그릴 자리도 없어. 지저분하게 이게 뭐야."내 걱정 섞인 타박에 아버지는 유리병 하나를 꺼내 오셨다. 그 안에는 진한 보랏빛의 머루주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끊임없이 낙서라고 부르며 눈살을 찌푸릴 때마다, 아빠는 단호하게 내 말을 교정해주셨다."이건 낙서가 아니고 그림이다."아빠의 그 고집스러운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빠는 한 잔의 머루주를 따르며 덧붙이셨다."겨울이 그림이 꼭 이 머루 넝쿨 같지 않냐?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진한 열매를 ..

3월생 봄이와 할아버지의 첫 씨앗 뿌리기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던 화분들은 늘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었다. 정성껏 물을 주고 영양제를 꽂아줘도, 유리창 너머의 햇살은 생명을 키워내기에 어딘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식물을 키우는 일에 재능이 없다고 믿어왔다. 심지어 집안에 흙이 있으면 벌레가 생기곤 해서, 지금 내 집에는 흙을 아예 들이지 않고 산다.하지만 아버지의 낡은 옥상은 달랐다. 3월의 어느 주말, 아버지는 이삿짐 속에 섞여 온 낡은 스티로폼 박스들을 옥상 한구석에 줄지어 세우셨다."아빠, 저 지저분한 박스들은 다 버리고 새로 사지 그래?"내 핀잔에 아버지는 또 허허 웃으시며, 어디선가 구해온 흙을 채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3월에 태어난 손주, 봄이를 곁으로 부르셨다."봄아, 네 이름이랑 똑같은 계절이 왔으니 우리 씨..

브랜드 아파트를 버리고 아버지는 낡은 옥상으로 망명했다.

아버지가 이사를 결정했을 때부터 나는 못마땅했다.남들은 은퇴 후 더 편리한 곳, 엘리베이터가 있고 병원이 가까운 브랜드 아파트를 찾아가는데, 75세의 우리 아버지는 거꾸로 가셨다. 가파른 계단, 손 많이 가는 노후 주택, 그리고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한 걱정까지. 내 눈엔 그저 재건축 예정지의 낡은 구옥일 뿐인 그곳으로 아버지는 기어코 짐을 옮기셨다.“대체 왜 사서 고생을 하러 가세요?”내 날카로운 질문에도 아버지는 그저 허허 웃으시며 짐을 싸셨다. 이사 이후, 주말에 들른 아이들이 “할아버지네 옥상에서 놀았어!”라고 신나서 떠들 때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거기는 왜 올라가! 위험하게. 내려와서 놀아.”아이들의 즐거움조차 외면한 채, 나는 옥상 문을 열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리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