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난간의 기록

로얄살루트인 줄 알았는데 머루주? 아빠의 기막힌 양주병 재활용

옥상관찰자 2026. 4. 2. 13:57

첫 날 말했듯, 나는 옥상 난간에 가득한 겨울이의 매직 낙서를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그것들을 지우는 대신 물끄러미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빠, 저 낙서 정말 안 지워도 돼요? 이제 더 그릴 자리도 없어. 지저분하게 이게 뭐야."

내 걱정 섞인 타박에 아버지는 유리병 하나를 꺼내 오셨다. 그 안에는 진한 보랏빛의 머루주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끊임없이 낙서라고 부르며 눈살을 찌푸릴 때마다, 아빠는 단호하게 내 말을 교정해주셨다.

"이건 낙서가 아니고 그림이다."

아빠의 그 고집스러운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빠는 한 잔의 머루주를 따르며 덧붙이셨다.
"겨울이 그림이 꼭 이 머루 넝쿨 같지 않냐?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진한 열매를 맺는 법이다."

사실 아빠의 이 머루주 부심에는 꽤나 강력한 근거가 있다. 얼마 전 남편이 일주일 정도 현장 지원을 나갈 때였다. 아버지는 기어코 직접 담근 머루주 한 통을 챙겨주셨다. 일하러 가는 사람한테 대체 술을 왜 주냐며 내가 극구 말렸지만, 남편은 아버님의 성의라며 넙죽 받아갔다. 그런데 웬걸, 현장에서 아빠의 머루주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단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 곳에서, 주스와 술 그 중간 어디쯤인 진하고 달콤한 머루주가 피로에 지친 사람들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남편이 현장을 떠날 때 사람들이 "다음에 올 때 그 머루주 꼭 또 가져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니, 아빠의 어깨가 으쓱해질 만도 했다.

게다가 최근 이사를 하며 겪은 황당한 사건도 있다. 엄마가 짐 정리 겸 양주들을 다 처분하라고 하길래, 내가 좋아하는 글렌피딕과 로얄살루트 병들을 얼른 우리 집으로 챙겨왔다. 드디어 분위기 좀 내볼까 싶어 병을 열었는데, 웬걸. 진한 보랏빛 액체가 꿀렁이며 흘러나왔다. 병 색이 어두워 몰랐는데, 아빠는 그 비싼 양주병들을 전부 당신의 머루주 저장고로 재활용하고 계셨던 거다. 위스키 향 대신 진한 머루 향이 코를 찌르는 순간,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에게 머루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1층 아파트 시절 관리사무소의 눈초리를 받아내며 지켜낸 머루 넝쿨의 결실이자, 비싼 양주병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는 당신만의 긍지였다.

지금 옥상 난간을 채운 아이들의 그림도 아빠에게는 그 머루주 같은 존재일 것이다. 당장은 무질서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낙서일지 몰라도, 아이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는지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그 자유가 아이의 내면에 어떤 열매를 맺을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아빠가 이 낡은 옥상에서 보여주고 있는 당신만의 철학이었다.

돌이켜보면 가끔은 내 일에 무한한 지지만을 보내주는 아빠가 답답한 적도 있었다. 누가 봐도 그 길이 아님이 보였을 텐데, 왜 미리 말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은근슬쩍 내 선택의 책임을 아빠에게 회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끄는 것보다 믿어주는 것이, 다그치는 것보다 기다려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사랑이라는 것을. 수많은 실패를 겪고 여러 방향으로 헤매더라도, 결국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아빠가 내게 주었던 가장 큰 지지였다.

아빠는 와인보다 머루주가 낫다며 흐뭇해하신다. 그 투박한 자부심 곁에서 겨울이는 오늘도 새로운 선을 긋는다. 아파트 베란다의 매끈한 유리창 아래서는 절대 허락되지 않았을, 조금은 지저분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는 성장 기록이다.

나는 여전히 옥상이 싫고 보안이 걱정되지만, 적어도 아빠가 그림이라 말하는 이 무질서한 자유가 아이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는 믿어보기로 했다.

이게 체험학습이지 뭐...